[시평] 경제배움e 인사이트 - 박재완 회장(2024.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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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경제교육 플랫폼에 대한 기대
박재완 (경제교육단체협의회 회장)
기획재정부가 구축하고 한국개발연구원이 콘텐츠를 총괄하는 경제교육포털(‘경제배움e’)이 디지털 플랫폼으로 확대 개편됐다. 반갑기 그지없다. 사실 우리 일상생활은 모두 경제와 관련이 있다. 생존에 필수인 의식주는 물론, 대를 이어가는 출산ㆍ양육ㆍ교육과 수시로 맞닥뜨리는 소소한 선택도 거의 경제 문제로 귀결된다. 그런 만큼 경제에 관한 올바른 이해는 넉넉한 삶을 꾸리고 자아를 실현하며 종족 보존의 욕구를 충족하는 대전제다.
이처럼 가계ㆍ기업ㆍ국가의 경제력은 그 구성원의 경제 인식ㆍ역량ㆍ노력이 가름한다. 어떤 민족보다 윤택한 삶을 영위하는 유대인 사례가 웅변한다. 그들은 재산을 모으는 건 고귀한 일이며, 가난은 불성실한 탓이라고 배운다. 물질적인 성공이 신의 축복이라는 긍정적인 경제관은 유대인에게 합리적인 경제활동이 몸에 배도록 했다. 유대인 자녀는 13세 성인식 때 받은 축의금을 스스로 관리하고, 20세 성인이 되면 경제적으로 독립한다. 자기책임 원칙에 충실한 경제적 독립이야말로 영적 성숙의 기반이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일부의 편견처럼 유대인이 돈만 밝히는 이기적인 심성에 매몰된 건 아니다. 유대인에게 돈은 인간의 역량과 창조적인 에너지의 결집체이지만, 동시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도왔는지 측정하는 지표다. 자선을 부(富)를 쌓는 비결로 손꼽는 유대인은 어려운 이웃을 도와 공동체 전체가 ‘샬롬’(Shalom), 곧 평온을 누려야 자신에게도 이롭다고 믿는다.
하지만, 우리는 소득과 교육 수준에 비해 경제에 관한 인식이 취약하다. 나이가 꽤 들어서도 부모의 도움을 바라고, 연고에 기대려는 성향이 강하다. 노력ㆍ창의보다 불로소득ㆍ요행을 바라는 한탕 심리와 과시 소비에 따른 거품도 상당하다. 경제를 움직이는 규율이 이완되고, 사기(詐欺)ㆍ무고(誣告)가 활개를 치며, 각자도생(各自圖生)이 보편화됐다. 느슨한 기초질서, 각박한 노사관계, 희박한 공민의식, 허술한 직업윤리, 얄팍한 상술 등 각성이 절실한 사안이 허다하다. 애덤 스미스가 설파했던 시장 경제에 긴요한 ‘측은지심(惻隱之心, Sympathy)’이 실종된 셈이다.
넉넉하고 너그러운 문명국가로 발돋움하려면, 온 국민이 시장 경제의 작동 원리를 이해하고, 공동체의 초석이 되는 존중ㆍ절제의 시민정신을 길러야 한다. 감성ㆍ쏠림에 초연한 슬기로운 소비, 직업의식과 근로 윤리, 기업가정신과 혁신, 상생의 노사관계, 상도의와 신용, 미래에 대비하는 연금ㆍ저축ㆍ투자의 중요성을 깨쳐야 한다. 사유재산ㆍ계약의 보호, 균등한 기회 보장, 공정한 질서 확립 등 시장 경제를 떠받치는 정부의 역할도 익혀야 한다. 무엇보다 어릴 적부터 잠재력과 소질을 주도적으로 계발해 스스로 삶을 개척하도록 자립심을 고취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새로 출범하는 디지털 경제교육 플랫폼에 거는 기대는 무척 크다. 첫째, 디지털 플랫폼은 공급자 위주로 제공됐던 ‘경제교육’이 수요자 중심의 ‘경제학습’으로 발돋움하는 디딤돌이다. 지금은 학교 바깥의 경제교육만 해도 쉰 개가 넘는 기관ㆍ단체가 각자 고유의 지향점에 따라 각개약진하는 공급자 중심의 양상을 띤다. 그러다 보니 경제교육이 획일적이고 일방통행에 머물러 흥미 유발에 역부족이라거나 특정 주제에 치우쳐 실생활과 동떨어진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반면에 디지털 경제교육 플랫폼은 실수요자의 차별적인 눈높이에 걸맞은 학습자 중심의 맞춤형(Interactive open) 교육을 촉진한다. 학습자는 자신의 욕구에 걸맞은 콘텐츠를 손쉽게 파악하고 최적 대안을 선택할 수 있다. 공급자 역시 수요자의 반응ㆍ특성을 포착해 콘텐츠를 적기에 갱신하는 등 학습자와의 양방향 피드백을 강화할 수 있다.
둘째, 누구나, 언제, 어디서든 접근할 수 있는 디지털 플랫폼은 학습자의 선택권을 넓힌다. 우리 국민의 압도적 다수는 경제교육의 필요성에 공감하지만, 그 기회는 매우 제한되어 있다. 경제교육을 받는 사람은 극소수이고, 교육 시간도 1인당 연간 2시간 내외에 그친다. 게다가 다문화가정, 신용불량자, 북한 이탈주민 등 취약계층은 여전히 사각지대로 남아있다. 디지털 플랫폼은 경제교육 접근권을 확대함으로써 이런 문제점의 순화에 이바지할 것이다.
셋째, 디지털 플랫폼은 다양한 콘텐츠를 집대성함으로써 경제교육의 상향평준화를 이끌 수 있다. 경제교육의 목표ㆍ대상ㆍ범위ㆍ수준이 제각각인 여러 경제교육 공급자는 플랫폼을 통해 콘텐츠의 비교ㆍ협업ㆍ공유ㆍ평가와 피드백을 활성화할 수 있다. 모범사례를 벤치마킹하고, 중복투자를 자제하며, 지역ㆍ대상별 수급의 괴리를 줄이는 한편, 교재와 강사의 질을 끌어올리는 등 상승효과를 거둘 수 있다. 학교 바깥 경제교육의 구심점인 경제교육단체협의회가 역점을 두는 과제이기도 하다.
초고령사회와 ‘대중(Crowd) 자본주의’가 눈앞에 다가왔다. 누구든 평생 학습을 통해 역량을 꾸준히 갱신하고, 근로자와 자본가의 두 속성을 함께 길러나가야 한다. 디지털 경제교육 플랫폼이 온 국민의 합리적인 경제관을 북돋워 선진문명국가 진입의 촉매가 되기를 기대한다.